2023
본향(本鄕), 마음이 머무는 자리
자연의 형상(形像)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 자체를 보는 나의 시선에서 얻어진다. 그러나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 형상의 특성을 연구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감각 지각의 느낌을 높이는 것이다. 내가 그리는 자연은 원시림에서 점차 사회적으로 달라지고 있는 변화하는 자연이다. 제주에는 자연과 교감하는 본향이 있다. 인간의 사회적 염원으로부터 시작된 본향은 제주의 정신세계를 지탱하는 오래된 사상이면서 신앙이었다.
본향은 인간이 자연과 하나가 되게 하는 매개체이다. 사람들은 본향을 위하고, 본향은 인간세계를 지키면서 자연에 순응했었다.
그러나 본의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자연 곁에는 늘 인간의 자국이 커진다. 자연은 인간과 조화로울 때 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지만, 인위적으로 변형되는 자연 앞에서는 금세 사람의 환경으로 변하게 된다. 나는 이를 ‘사회적 풍경(social landscape)’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풍경은 하늘과 땅, 다양한 동·식물과 어우러지면서 공존하는 동양의 자연관을 근저에 둔 표현이며, 자연에서 보이는 대상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서양의 사실주의적 관점으로 여과시켜 자연에 남겨진 흔적을 그리는 것이다. 이는 인간들에게 자연으로부터의 위안과 감성적 공감을 얻는 데 생태의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해 준다.
만물은 운동을 한다. 자연과 같이 움직이는 인간 공동체도 하나의 사회를 이루면서 흥망성쇠의 길을 간다. 사회적 풍경으로 예술은 인간의 정신적 위안을 주는 쾌(快)의 역할을 수행하고, 삶이란 긍정적일 때 더욱 활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자연 미학의 기능은 우리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회적 풍경의 범주에는 ‘경험적 풍경(Empirical landscape)’이라는 인접 개념이 있다. 사회적 풍경의 맥락이지만, 거기에 직접적으로 스며든 경험과 가족들의 직‧간접적인 삶까지를 아우르는 부모님 세대들의 체취가 있는데 4·3, 본향당(本鄕堂), 잠녀(해녀) 등 다양한 제주의 원형질 생활사들이 녹아있다. 나에게 자연은 삶과 죽음에 대한 생성과 소멸에 대한 미학이 경험적 풍경으로 되살아난다. 나의 경험적 풍경에는 원초적 이미지와 상징이 있다. 바로 자연을 바라보는 내 의식 한 가운데에는 ‘본향(本鄕)’이 자리하고 있다.
사실 ‘본향(本鄕)’은 본향당에 머무는 마을 수호신의 이름이다. 본향을 그대로 직역하면 단순히 ‘고향’이라는 출신의 개념을 넘어선다. ‘본향’은 자신의 태생의 근본 물음을 던지는 삶의 본질을 아우르는 곳이자, 공동체의 역사적 시원과 생산의 문화를 조화롭게 보듬은 생생한 현실의 ‘토포필리아(topophilla)’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백록(白鹿)’은 제주 설화에서 신선이 타고 다녔다는 영물(靈物)로써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한라산 상징이었다. 특히 도교의 자연 사상에서 비롯되어 ‘장수’와 ‘지고한 순수성’, 그리고 자연을 지키는 ‘평화로운 존재’이다. 또한, 작품의 곶과 자왈의 공간들은 ‘내 마음의 자리에 존재’하는 무의식에 의해 창조된 마음이 머무는 곳의 지고한 표현이다. 다시 말해 경험적 기억과 감각 지각에 담긴 마음의 흔적으로 현장에서의 드로잉을 거쳐 재조합한 ‘만들어진 풍경’ 인 것이다. 마음으로 그려진 자연의 모습을 실제처럼 표현함으로써, 아름다움이 곧, 그것을 파괴하는 것들에 대한 대항적 관점이며, 무분별한 개발로 사라져가는 자연을 지키고자 하는 깊은 마음의 심연으로부터 나오는 외침인 것이다.
2022
진정한 제주 정신의 소명(召命), 신형상성 찾기
내 생(生)의 인연으로서의 동자석
2019년 9월 어느 날.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에 죽을 뻔한 위기가 찾아왔다.
내 나이 31.
급성 심근경색.
심장을 부여잡고 응급실을 시작으로 여러 병원을 알아보던 중 운(?)이 좋게도 바로 시술이 가능한 의사가 있는 병원으로 가서 겨우 고비를 넘겼다.
원인은 술, 담배, 과로, 스트레스, 불규칙한 식습관 등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림을 그리는 게 좋다고 1년에 20개의 가까운 전시(단체전 및 개인전)를 소화하느라 건강을 챙기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신이 있다면 잠시 쉬어가라는 계시겠지.’라고 생각하고 웃으며 넘기려 했지만,
무서웠다.
정말로.
평생 약을 달고 살아야 하며, 잘못하면 재발 할 수 있다는 말에.
심장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다시 느끼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어렸고 겁이 났다.
.
사실 내게 뭔가 필요했다. (현재까지도 믿고 의지하는 종교는 없지만.)
아니,
그냥 믿어야 할 무언가가 필요했었던 것 같다.
당장 잡혀있는 전시를 걱정하며, 병실에 누워 며칠을 고민했다.
내 생은 비록 31년 밖에 살지 못했었지만, 그 동안의 세월이, 좋았던 기억이, 힘들었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중에 아주 어릴 적 ‘동자석’을 연구하시는 아버지(현재는 한국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가이며, 제주미술사와 문화사, 미학을 연구 및 집필)를 따라다니며, 제주 곳곳에 있는 산담(제주도 무덤의 울타리)에서 놀던 기억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
겁이 없었다.
아주 재미있었고.
남들은 기운이 좋지 않다고, 무섭다며 피하는 무덤이 나의 놀이터였다.
그리고 무덤 앞을 지키던 작은 동자석.
.
그림 그리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없는 나는 어린 시절 가장 좋았던 기억의 동자석을 그리며 동자석을 믿어보기로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죽은 자를 위한 영혼의 동반자이자 수호신이며,
산자에게는 마음의 안정과 집안의 평온을 주는 친구 같은 수호신.
나는.
어린 시절에 인연을 맺은 내 삶의 상징으로써 동자석을 그리며, 내 앞날의 화평과 안녕을 기원해보기로 하였다.
이것을 인연 된 생명 사랑, 삶의 노래라고 부르고자 한다.
제주 사람들은 무덤을 그냥 '산'이라고 표현한다. 산은 원래 제후의 산릉과 같다고 하여 한나라 때부터 유래한 말이다. 그리고 봉분 주변에 돌담을 쌓아 울타리를 만드는데 이를 ‘산담’이라고 부른다. 이 산담은 세계 유일의 600년 된 역사 유적인 것이다.
또한 집안이나 문벌을 위해서 산담을 크게 하고 석물을 화려하게 꾸민다.
산담의 규모와 무덤의 치장은 해당 집안의 효도, 경제력, 사회적 지위의 척도가 되고 있다.
제주인은 죽음에 대해 산 자와 죽은 자를 결별한다고 여기지 않았고 ‘초상(조상신)’은 이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장소를 달리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같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초상을 통해 산 자와 죽은 자와의 만남을 통해 교감을 가지고 서로를 위하고 있다고 믿었다.
척박한 섬에서 살아가야 하는 제주인들이 믿고 의지하는 현실 종교가 된 셈이다.
왜 죽은 자의 무덤에 천진한 아이(童子)를 세웠을까.
노장사상에서 동자는 신선을 보필하는 심부름꾼이다. 불교에서 동자는 보살의 보필자라는 상징이 있으며, 유교에서 또한 선비의 잔심부름꾼을 하는 도우미로, 또 무속에서는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하는 동자신으로도 기능한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동자라는 아이의 형상이 무덤의 조상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에 따라 그것의 역할을 알 수 있다.
동자는 고금의 신앙, 문화, 종교를 막론하고 표현되는데 아이라는 의미에서 ‘맑고, 천진무구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 깨끗한 심성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동심(童心)하면 그대로의 마음, 곧 순수하고 진심의 표상이 되는 것이다.
동자는 부모, 어른들에게 세상의 희망이다. 부모나 어른들 자신이 투사된 분신으로서 동자를 가까이하는 것은 동자를 통해 맑음, 깨끗함, 새로운 희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유교에서 아이는 곧 조상이 환생한 상징이 되며, 후손들은 그를 받들어 마치 살아있는 조상이 현실에 있다고 믿었다. 그런 의식 속에는 동자의 진심이 조상의 마음이기도 하지만 조상의 마음 또한 진심으로 후손에게 귀감이 되도록 후손으로 하여금 동자의 본심을 잃지 핞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동자석을 무덤에 세우는 배경이 된다.
아이에게서 조상을 보는 것, 조상이 아이를 사랑하는 절대 불변의 인간관은 오늘날 가족 사랑의 교감이 되고도 남는다. 죽음을 승화해낸 삶의 재생 과정이라고나 할까.
동자석이 전통시대의 석상이지만, 현대적인 의미로 말하면 조각 장르에 속하고, 내용적으로는 민간 조각이라는 점에서 아이 모양을 돌로 만든 앙증맞은 조각상이다. 동자석은 무덤에 세운다는 의미에서 산담과 함께 기념비성을 띠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석상으로써 하나의 형상에는 그것의 사회 · 경제적 배경이 배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의 문화 상징적 의미에는 분명히 당대의 세계관이 깊게 내재 돼 있다. 그러므로 동자석은 전통 조각으로서 미술사의 대상이자 동시에 미학적 대상이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제주에는 동자석이 없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이러한 동자석의 가치를 진작 알게 된 타지 사람들은 육지로 밀반입하여 가진 자(?)의 정원에 조경용 석상으로 높은 가격에 판매를 했다.
이것은 제주사람들의 인간애와 순수한 효심, 제주의 오래된 정신을 앗아가는 행위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화산섬, 바람의 섬에 있던 천진난만 한 아이 동자석은
이제는 그 자리에서 거의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나의 어릴 적 기억의 소환으로,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동자석의 형상을 우리 시대에 맞게 기록화적인 측면, 재현적인 측면을 넘어서는 심리적이면서 정신사적인 작품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는 진정한 제주 정신 찾기라는 시대적 소명의 의미로써 어린 시절 인연이 되었던 동자석 작업을 통해 21세기의 신형상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2021
제주의 풍경은 단순히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닌 역사와 문화, 인간의 삶이 녹아있는 사회적 풍경이다.
예술이란 의미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것이 슬픔이든 기쁨 감정이든, 아니면 특별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술은 ‘우리들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에, 한 사회를 연구하고 관찰하며 표현하는 삶의 연속적 행위’라고 생각한다. 시·공간적으로 볼 때 화산섬 제주는 본토와는 다른 풍토적인 특수한 공간적 삶의 공동체와 그 사회문화,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고난의 역사가 있다. 지금도 제주 사람들의 생활과 그 주변에는 갖가지 시간의 흔적들이 남아있는데 원시 자연과 로컬리티 경관이 그것이다. 전방위적으로 열린 바다 복판에 타원형의 섬은 예술의 본원적인 물음을 탐구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인문·사회적인 환경을 갖고 있다.
나는 대상을 그대로 묘사하고 기록하는 재현적 예술을 하기도 하지만, 대상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 개념적이거나 감각적 측면으로, 또는 심리적이면서, 혹은 사회적인 발언의 측면에서 작품을 창작하고 있다. 이것은 겉으로 보여지는 재현보다는 무의식적 심리가 만들어내는 풍경, 그리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상징적 리얼리즘(symbolic realism)을 찾는 복합적인 시도로 볼 수 있다. 즉, 사실적인 현실 세계에 목격자의 시선으로 사회적 자취를 찾고 있다. 어디에도 늘 있는 삶의 풍경이지만 결국은 인간이 흔적을 남기고 지나간 평범하지 않는 장소로서의 풍경을 발견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난개발로 인해 가속화되는 자연파괴와 환경 훼손이 이루어지는 동시대 섬 속에 서 있다. 나의 눈은 그것을 지켜보면서 단순히 보이는 섬의 풍경에서, 은폐된 인간의 흔적을 찾아 우리가 누리는 마지막 자연과 공동체 사회를 마치 증인이 돼 목격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나는 이 작업을 “사회적 풍경(social landscape)”이라는 이름으로 풍경 속의 사회적 흔적을 보여주고자 한다.
나는 불가능하지만 생생한 자연을 꿈꾸고 있다. 문명의 결과들을 볼 때 점점 불가능한 자연을 꿈꾸게 만든다. 어제를 생각할 수 있으면, 오늘, 내일의 가치를 알 수 있듯이. 버릴 수 없는 연대기(年代記, chronicle)들 말이다. 생존을 위해 가뭄의 돌밭을 일궈내며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Life history narrative), 그들의 삶 속에서 탄생한 제주의 담(돌담-밭담, 산담, 원담), 야생(grow wild) 그대로의 숲인 곶자왈 등 지역 특유의 과거로부터 내려온 모습, 자연 원초성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제주 자연의 가치라고 생각하는데, 현재 제주는 급격하게 일어나는 사회변동, 무분별한 도시지향의 구조적 복잡성, 과학기술의 횡포와 투기자본의 혼란스러운 수탈의 후유증으로 인해 지켜져야 할 제주의 아름다운 원형(archetype) 자연과 시간의 흔적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나의 표현은 빠른 바람의 속도를 느끼듯 단색화의 스타일을 혼융하고 있다. 스치는 색으로서, 흔들리는 시간의 색으로서의 무채색은 색채를 최소화하면서 어두운 제주 자연과 그 안에 담겨있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의 내러티브(narrative)로 작동하고 있다. 컬러는 현실의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지만, 그 일상 속에는 과거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무심한 것에는 엄청난 사실들이 쌓여 있는데, ‘사회적 풍경’에는 기억에도 미미한 것들이 그 풍경 속에 묻힌 채 일상의 평범한 것, 하찮은 것이 돼버리는 무관심(無關心)을 일깨우는 것이다. 사회 속에 모든 풍경이 있고, 풍경 속에 사회의 부분들이 여러 형태로 잠들어 있다.
나는 사회적 풍경이라는 개념을 통해, 잃어버린 자연과 시간의 사건(history)으로서의 흔적을 꿰고 있다. 넘치는 문명에 도취된 우리들의 세상 지나온 이야기를 오늘 화면에서 환기시키는 것은, 오늘날 무관심증으로 병들어가는 문명 아래의 마음을 치유하는 ‘연유(緣由)닦음’의 행위이기도 하다.